잉까의 혼이 깃든 안데스와 아마존의 생태문명 탐사

조구호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페루의 안데스·아마존 생태문명 탐사와 학술·문화 교류 네크워킹을 위한 여정은 멀고 지난했다. 리마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대사관을 방문해 박선태 공사, 현지인 직원 알도 시스네로스(Aldo Cisneros)와 현지조사에 관해 협의하고, 유관 기관 선정 및 방문 일정을 조율했다. 중남미 전문가인 박선태 공사는 내가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한 알도는 다방면에 깊은 지식을 지닌 젊은이로,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 첫 부분을 줄줄 에울 정도였다. 나는 그와 함께 몇 소절을 합창하듯 암송했다.

학술 및 문화 교류 활동

2월 17일 오전, 한국과 페루 정부의 협력사업인 꾸스꼬의 친체로(Chinchero) 국제공항 공사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양국 정부와 사업체의 관계자들이 사업의 현황을 소개하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는데, 공항 건설에서 문화관광, 환경, 생태, 농축산업의 지속발전, 원주민 공동체와의 조화 등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오후에는 국립 라 몰리나 농업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graria La Molina)를 방문해 총장 엔리께 플로레스 마리아싸(Enrique Flores Mariazza)와 생태 및 환경 관련 학술 교류에 관해 논의했다. 면담에는 환경, 생태, 농업 관련 교수들이 참여해 의견을 교환했다. 내가 중남미연구소의 HK+사업을 소개하면서 학술교류 의사를 전하자, 총장은 페루 최대 최고의 농업, 축산, 식량, 환경 전문 교육 및 연구 기관인 국립 라 몰리나 농업대학교가 거둔 성과를 설명하고, 중남미연구소와 MOU 체결에 동의하면서 국제협력 및 교류 사업 담당자에게 MOU 문서의 시안을 준비시켜 내게 건네주었다. 뿐만 아니라 본 대학 내에 중남미연구소의 분소 설치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1902년에 설립된 국립 라 몰리나 농업대학교는 캠퍼스 면적이 220헥타르에 달해, 페루에서 가장 크다. 정식 MOU는 올해 여름 방학 때 체결하기로 약속했다.

밤에는 2019년에 리마에서 개최된 빠나메리까나(Panamericana) 대회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국립국장에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기 전에 페루의 문화 체육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리셉션에 초대받아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대회 준비부터 종료 후까지 전 과정을 담은 것으로, 페루 사회의 화합, 신뢰성 확보, 희망찬 변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노력 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20일에는 환경부 ‘자연자원의 전략적 개발’ 담당 차관(Viceministro de Desarrollo Estratégico de los Recursos Naturales) 가브리엘 끼한드리아 아꼬스따(Gabriel Quijandría Acosta)와 면담했는데, 국제 업무 협력 국장(Directora de la Oficina de Cooeración y Asuntos internacionales) 마르따 꾸바 끄로끌레똔(Marta Cuba Croncleton)이 배석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지한파 인사인 차관과의 면담에서는 안데스 산맥, 아마존, 태평양 등 다양한 자연을 지닌 페루의 생태환경의 보전 및 자원개발,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의 문제에 관한 차관의 설명을 듣고, 나는 중남미연구소의 HK+사업을 소개했다. 중남미연구소와 페루 환경부는 학술 및 문화 교류 협력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2월 26일에는 명문 사립 리마대학교의 오스까르 께사다 마끼아벨로(Óscar Quezada Macchiavello) 총장, 빠뜨리시아 스뚜아르트(Patricia Stuart) 부총장과 리마 소재 한국식당에서 오찬을 겸해 면담했다. 페루의 저명한 기호학자인 총장은 중남미연구소의 사업에 큰 관심을 표하면서 중남미연구소와 리마대학교의 학술 및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꾸스꼬 주변 잉까 생태문명 탐사

21일, 꾸스꼬(Cusco, Qosqo) 시내에 산재한 잉까 시대의 ‘석조문명’을 탐사했다. 잉까인들의 돌에 관한 지식, 상상력, 기술과 솜씨는 신의 영역에 속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돌담에는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지닌 돌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12각형 돌까지 이용했다. 어느 돌담에서는 잉까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 퓨마의 형상도 볼 수 있었다.

꾸스꼬 시내에 있는 꼬리깐차(Coricancha)에서 잉까의 세계관, 석조 건축의 신비 등을 조사하고, 인근에 있는 껜꼬(QenQo), 뿌까뿌까라(Pucapucará), 땀보마차이(Tambomachay), 삭사이우아만(Saqsayhuamán) 등의 유적지를 탐사했다. 특히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거대한 돌(어떤 것은 무게가 300톤에 이른다)로 이루어진 요새 삭사이우아만에서는 잉카인들이 지닌 고도의 기술, 극도의 끈기, 인내심, 협동심 등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삭사이우아만을 비롯한 꾸스꼬가 지닌 도시계획학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철학적 의미를 탐색하면 좋은 융복합 논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22일, 마추삑추를 탐사했다. 웅장한 안데스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버스와 기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마추삑추에 도착했다. 수시로 밀려들어 마추삑추를 휘감아버리는 운무에는 마추삑추를 만들고 살았던 잉까인들이 자신들의 신, 자연과 나누던 대화, 그들의 내밀한 삶의 얘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일부 유적은 훼손의 우려 때문에 관람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가이드는 마추삑추가 더 많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전망대에서만 관람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추삑추에서 3시간 정도 머물며 잉카인들의 생태 철학, 생태적 삶,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지혜, 기술 등을 체감하면서 그들의 세계관, ‘신-인간-자연’의 관계에 관해 탐색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23일, 꾸스꼬 인근의 친체로(Chinchero), 모라이(Moray), 마라스(Maras)m 오얀따이 땀보(Ollantaytambo) 등의 유적지를 탐사했다. 마추삑추와 쌍벽을 이룬다는 삐삭(Pisac)은, 얼마 전에 붕괴 사고가 발생해 반대편 전망대에서 전체적인 모습만 감상했다. 특히 모라이는 잉까인들의 생태학적·과학적 농업기술이 어느 정도로 뛰어났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이들 유적지를 통해 잉카인들의 생태적 지혜, 기술, 호기심, 모험심, 협동심, 인내, 근면성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24일, 삐끼약따(Piquillacta), 띠뽄(Tipón) 등지를 답사하면서 잉카인들의 농업기술, 수자원 관리 방식과 지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꾸스꼬 주변에 산재한 잉까의 생태문명을 탐사하면서 얻은 지식과 영감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학술적 성과를 산출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 생태문명 탐사

2월 15일, 페루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의 작품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ón y las visitadoras)』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이끼또스(Iquitos)에 도착해 아마존 강 주변의 생태 환경을 탐사하고, 아마존 원주민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그들이 대자연 속에서 이룬 삶, 전통,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16일에는 이끼또스에서 가장 큰 농축수산물 시장인 ‘벨렌(Belén)’에서 거래되는 아마존 산물들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조사하고, 이들 먹을거리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았다.

페루의 아마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끼또스의 도처에 깔려 있는 쓰레기와 악취, 무질서, 소음, 저개발, 가난, 후진성 등은 아마존의 생태 및 환경, 인간의 삶의 질 등에 관해 많은 것을 성찰하게 했다. 한마디로 말해 이끼또스는 중남미의 전형적인 후진성과 문제를 모두 지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깊은 생태학적 성찰과 지속가능한 실천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현지조사를 통해 페루의 안데스·아마존 지역 생태문명을 탐사하고, 여러 학술 문화단체의 전문가들과 학술 및 문화 교류에 관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인문학적 감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고, 중남미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사업의 이론적·실용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