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아메리카 고문서 워크숍

정혜주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어스틴 소재, 텍사스대학, 메소아메리카 센터는 마야 상형문자 해독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행사, 마야상형문자 워크숍은 1977년 린다 쉴리(Linda Schele)가 시작하였다. 그런데, 쉴리는 문자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예술사가 전공이었다. 1970년 그녀는 빨렌께(Palenque, Chiapas)를 방문하였을 때 건축물의 벽에 새겨진 부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다음 해에 다시 방문하여 그림과 비문을 베껴 그렸다. (마야 문자가 예술적이기는 하다) 거기서부터 해독이 시작되었다…

이후 1998년, 린다가 사망할 때까지 워크숍은 매년 열렸으며, 모인 연구자들은 서로가 해독한 부분을 놓고 토론하면서 마야문자를 조금씩 해독해갔다.

내가 린다 쉴리를 직접 본 것은 1996년, 멕시코, 체뚜말(Chetumal, Quintana Roo)에서 있었던 마야학회에서였다. 그녀는 늘 큰 배낭을 메고 다녔다. 학회의 마지막 날, 모두 함께 마야 유적지 지반체(Dzibanche, Quintana Roo)를 방문하였다. 피라미드의 계단에는 문자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배낭을 열어 조그마한 낚시용 접이의자와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그 위에 앉아서 비문을 베끼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문자를 그리고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상형문자를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마야문명 연구에 있어서 상형문자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텍사스대학의 상형문자 워크숍에 한번은 가고 싶다고 늘 생각했고, 그때마다 지반체에서 보았던 린다 쉴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월 14일, 텍사스대학 ‘톰슨 컨퍼런스센터(Thompson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하였다.

오전 9시, 워크숍을 할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7-8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열댓 명이 모여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사이에 워크숍의 규모가 커져서 상형문자를 배우고 해독하는 반은 따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고문서 연구반을 택하였다. 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 이상이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책, 메모장을 보니 고문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림문자와 깃털 뱀의 자손들(Pictographic Language and the Children of the Plumed Serpent) 이라는 주제의 워크숍 시작. 워크숍 리더는 존 폴(John D. Pohl) 교수, 고문서에서 찾을 수 있는 믹스떼까의 왕, 8사슴의 영웅적인 삶에 대한 것이었다. 총 86 쪽의 고문서 누딸(Codice Nuttal)을 처음부터 한쪽씩 함께 읽어 나갔다. 특히 주인공의 달력 날짜 이름인 8-사슴과 다른 사람들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에 중점을 두고 보았다.

점심을 1시간 먹은 것 이외에는 오후 5시까지 워크숍은 따로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되었다. 나이도 많은 존 폴 교수는 거의 7시간을 서서 이야기하고 질문을 받았다.

워크숍 현장: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존 폴 교수
고문서에 등장하는 장소의 실제 유적지, 고문서의 문자와 주인공

이튿날도 오전 9시에 시작하였다. 존 폴 교수의 고문서 워크숍 계속. 오전에 누딸 고문서에서 8사슴의 연대기 날짜와 내용의 확인을 마치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보르히아 고문서(Codice Borgia)로 누딸 고문서의 내용을 확인 및 보완하였다. 특히 달력 부분에 중점을 두어 누딸 고문서와 날짜를 교차 확인하고, 더불어 믹스떼까와 같은 부분과 다른 점을 가진 아스떼까 달력의 구성과 각각의 날에 관련된 신들의 모습을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믹스떼까 고문서에 쓰인 달력 날짜를 이름으로 사용했던 의미를 점검할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방법에 따른 메소아메리카의 우주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도 오후 5시까지 워크숍 계속 했다. 강연자와 참석자의 체력에 감탄하였다.

2020 1. 16 목요일에는 등록하기 위해 오전 8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강연실에는 이미 데이비드 스튜어드(David Stuart) 교수가 와 있었다. 그는 PPT를 준비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8살 때에 마야유적지 현장에서 비문을 베꼈던 소년이었다. 아버지, 조지 스튜어드는 마야 고고학자, 그와 형제들은 아버지가 발굴하는 현장에 쫓아가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하였다. 형들이 뛰어다니며 놀 때, 그는 마야문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12살에 마야상형문자에 대한 논문을 썼다. 린다 쉴리는 그 논문을 보고 데이비드를 워크숍에 초청하였다.

린다 쉴리가 죽었을 때에 데이비드 스튜어드는 하버드대학, 피버디 박물관 학예사인 동시에 교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하버드를 버리고 텍사스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그는 2004년에 텍사스로 옮겨 린다 쉴리의 뒤를 이었다.

그가 오늘 발표할 내용은 ’상형문자와 도상 속의 공간 구분(Categories of Space in Hieroglyphs and Iconography)’ , 어제에 이어 나는 또다시 놀랐다. 참석자가 어제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고, 대한민국에서는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어려울텐데…

오전 9시, 메소아메리카센터의 소장인 데이비드 슈튜어드 교수가 이끄는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마야문명 고전기의 유적과 유물에 남겨진 글씨와 그림을 통하여 마야사람들의 우주관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함께 본 자료는 기존의 것을 조금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최근에 발굴된 자료로, 아직 연구되지 않은 자료들이었다. 공간, 방향, 주변과 중심에 대한 것 및 공간에 대한 개념과 태양의 움직임과의 관련, 그리고 달력체계와의 연관성을 살폈다.

맨 처음에 제시한 자료는 리오-아술(Rio Azul, Guatemala) 유적 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북→서→남→동의 4방향을 나타내는 글자. 그 다음은 비문에서 중심과 네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를 찾았다. 중심축으로 표현되는 수직적인 공간은 신과 교감하는 의례의 구심점(Chan Ch’e’n, ceremonial foci)이며, 네 방향으로 표현되는 수평적인 공간은 우리가 사는 땅(kab ch’e’n)이다. 산바르똘로(San Bartolo, Guatemala), 삐에드라스네그라스(Piedras Negras. Guatemala), 까라꼴(Caracol, Beliza) 등에서 나온 새로운 자료들에서 보는 상형문자와 그림은 매우 흥미로왔다.

그는 비록 존 폴 교수보다 훨씬 젊긴 하지만, 8시간을 꼬박 서서 수많은 데이터를 제시하고, 이야기하고, 질문에 답하고, 의견을 들어주고, 본인의 견해를 나누었다. 열정은 나도 아직 갖고 있지만, 체력은 못 따라 가겠다! 사흘간 머릿속이 꽉 찬 기분이었다. 너무 흐믓하여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마구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구 찍은 워크숍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려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기억은 하루가 지나면 70%를 잊는다고 하더니… 그래도 자료를 보면 생각이 나리라고 기대한다.

리오아술(Rio Azul) 무덤 유적의 벽에 그려진 문자, 동쪽을 의미하는 낮의 독수리 주군(Day Eagle Lord)
마야문자 의례의 공간(chan ch’een), 땅의 공간(kab ch’een)
산바르똘로(San Bartolo) 유적의 벽화, 날짜가 여럿(3익, 1아하우)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