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강국 베네수엘라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며

여승철 주베네수엘라 대사대리

아시아로 향하는 단거리 노선을 찾아 나섰던 콜럼버스 일행은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 군도에 도착한 이후 6년간 카리브지역만 맴돌던 끝에 1498년 8월 6일 3차 항해과정에서 처음으로 남미 대륙에 발을 디딘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베네수엘라였다. 콜럼버스는 베네수엘라를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기후를 갖춘 천국과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 이들은 인디언 원주민들로부터 베네수엘라 오리노코(Orinoco)강 주변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마을‘엘도라도(El Dorado)’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유럽인들에게 퍼뜨리며, 이후로 수많은 유럽인들이 이상향을 찾아 나서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엘도라도(El Dorado)’가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는 않지만 베네수엘라는 이보다 훨씬 뛰어난 보물을 보유한 곳이었음이 수백 년이 지난 후 밝혀진다.

베네수엘라는 미인이 많은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미인대회인 미스유니버스와 미스월드를 통해 지금까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우승자를 배출하였다. 하지만 미인보다도 더 베네수엘라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석유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최대 규모로 미국 정보기관의 통계에 의하면 총 3천억 배럴이 매장되어 2천6백억 배럴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매장국가로 기록된다1).

이렇듯 베네수엘라 여기저기에 매장된 석유는 20세기 초까지 만해도 아스팔트 생산용으로만 사용되었고 특별한 금전적 가치가 높지 않았다. 1914년 처음으로 영국회사에 의해 상업용 석유개발이 이루어지고, 1920년대 미국회사들이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들면서 그 값어치를 보기 시작한다. 1920년 181개에 불과했던 석유개발권은 3년만인 1923년에 2,374개로 크게 증가하며, 북서부지역에 위치한 남미 최대의 호수 마라카이보(Maracaibo) 호수를 중심으로 개발이 급진전한다.

1925년에는 매일 54,000배럴 이상을 생산하면서 베네수엘라에서 전통적으로 수위를 차지했던 커피, 카카오 전체 수출을 제치고 베네수엘라 경제를 이끄는 단일 수출품목에 우뚝 올라선다. 그리고 1928년에는 매일 생산량이 29만 배럴로 치솟아 오르며, 곧바로 세계 제 1위 석유생산국이자 수출국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렇듯 석유소비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도 유래 없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다.

베네수엘라는 20세기 초반까지 가난한 농업 국가였으며, 근대화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외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외채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석유수출의 호황으로 그 많은 외채를 1930년까지 대부분 갚아 버린다. 그리고 각종 인프라 시설물과 호화로운 건물 숲을 건설하면서도 1950년에 이르러서는 중남미카리브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외채부담이 없는 국가로 남게 된다. 석유개발이 본격 시작된 이후 불과 30여년 만에 베네수엘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화려한 빌딩과 각종 편의시설물을 갖춘 부자 나라가 된 것이다.

석유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인 1920년 베네수엘라 1인당 경제소득은 795불로 중남미지역(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평균 1,913불, 선진국 평균 4,090불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1960년에는 5,453불로 크게 증가하면서 중남미지역 최고 부유국가가 된다.(중남미지역 3,906불, 선진국 9,375불) 또한 1920년부터 196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4.8%를 보이면서 중남미지역 1.8%, 선진국 2.1%를 크게 앞서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77년 경제위기 이전까지 이러한 수치를 오히려 무색케 해주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은 전세계 최상위권에 머물게 된다. 아래 도표를 통해 1920년부터 일기 시작한 석유개발 붐이 베네수엘라 경제발전에 미친 결과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830년 ~ 2009년 베네수엘라 1인당 GDP(A. Baptista 자료 참조)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호황 속에서 베네수엘라 1960년대 석유부장관을 역임한 페레스 알폰소(Pérez Alfonso)는 자신의 에세이집 ‘악마의 똥에 파묻혀(Hundiéndose en el excremento del diablo)’를 통해 “석유는 검은 황금이 아니라 악마의 똥”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산업에 적신호를 예고하면서 다양성을 갖춘 산업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시한다. 이러한 경고는 멀지 않아 찾아오게 되는데 앞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1977년 최고 정점을 찍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이후로 현재까지 침체상태를 보이고 있다2).

IMF는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이 2020년 25%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6,500%, 실업률은 54.5%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는 중남미카리브지역 역사상 최악의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침체를 보이고 있는 국가중 하나가 되었다. 중남미카리브지역 최고 부자나라로서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구겨졌다고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던 나라가 이렇듯 곤두박질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베네수엘라 역사경제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이에 대한 주요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지나치게 석유생산과 수출에 의존해 왔던 경제구조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베네수엘라의 경제상황은 국제유가의 등락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려왔으며, 석유산업에만 의존한 결과 현재와 같은 최악의 상태까지 내려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1972년 중동전쟁 발발로 국제석유가격이 배럴당 약 3.7달러에서 1974년에는 10.5달러, 다시 1978년에는 12달러로 오르면서 베네수엘라 국고 수익이 3배 이상 치솟는다. 차베스 정부(1999-2012)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부 초기 배럴당 9불 이었던 국제유가가 임기 말에는 130불까지 치솟는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한 결과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학자들이 주장하는 요인은 정부의 재분배(redistribución) 정책이다. 1970년대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확보된 충분한 국가재정을 철저한 계획 없이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계획하거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폭 개선시킨다. 베네수엘라 역대 정부 대부분이 석유수출에 따른 수익이 크게 늘어날 때마다 이를 재분배 정책에 상당부분 치중해 왔으며, 유가하락으로 반대현상에 접어들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외채를 통해 이러한 정책을 계속 유지시켜 왔던 것이다. 더욱이 1999년 차베스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노선으로 기울게 되고, 이에 따라 재분배 정책의 비중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기존의 역대정부보다 재분배 정책에 더욱 치중했던 차베스 정권 기간(1999~2012)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차베스의 대중적 인기도 높아 14년 통치기간 중 대통령,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 지방의원, 헌법 개정 등을 위한 총 19번의 각종 투표에서 18승 1패의 기록을 보이고 있다3). 하지만 2013년부터 차베스로부터 정권을 이양 받은 마두로 정부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마두로 정권이 시작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국제유가는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한다. 국제유가 하락 이외에도 각종 국내외 정치적 문제가 혼합되어 마두로 정권은 그야말로 폭탄세례를 연거푸 맞게 된다. 2018년 대통령선거 과정의 불투명성에 따른 문제가4) 제기되면서 미국의 경제적 제재에 부닥치게 되며, 세컨더리 보이콧5)에 따라 베네수엘라에 투자하던 외국기업들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간다. 급기야 최대 석유생산수출국에서 휘발유가 부족해 주민들이 며칠 동안 주유소 앞에 줄을 서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리고 2020년 3월 이후 침투하기 시작한 코로나 19 전염병 확산은 베네수엘라 경제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결국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베네수엘라는 92.4%의 경제성장 하락률을 보이면서6) 최악의 세계 10대 경제성장률 침체국가 대열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이렇듯 현재 베네수엘라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빠져 있다. 하지만 남미지역을 스페인 통치에서 독립시켰던 영웅 시몬볼리바르(Simón Bolivar)의 자손답게 베네수엘라 인들은 절대 체념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없는 석유를 비롯한 천연가스, 보크사이트, 철광석, 금 등 무수한 양의 천연자원과 커피, 카카오를 비롯한 풍부한 농산물, 그리고 당장이라도 개발에 나서면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우수한 관광자원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으며,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우수한 문화를 부러워한다. 이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이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천연자원을 부러워하듯이 이들은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본을 부러워한다. 이들은 석유는 없더라도 뛰어난 두뇌와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세계 일류의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인들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바라며, 언제든 친구가 되어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보다도 오히려 비슷한 처지에서 꼭대기로 오르고 있는 우리와 더 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도 이들은 서로 win-win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BTS 등 K-pop이 알려지고,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드라마가 더욱 확산되는 등 한국문화가 널리 소개되면서 일반대중은 물론이고 유명 정치인들도 한국의 대중문화 우수성에 엄지척한다. 얼마 전 전직 산업부장관과 미팅과정에서 자신의 손주가 BTS 광팬이라고 하기에 DVD를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매일 같이 메시지를 보내 감사를 표한다. 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공공외교활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당장 포스트 코로나가 예상되는 2021년에는 베네수엘라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11월 초 미국대선이 끝나고 12월 6일 말도 많던 베네수엘라 총선이 진행된 이후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흐름에 어떠한 식으로든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한 나라 두 대통령(마두로 대통령과 미국, EU국가 등이 인정하는 과이도 임시대통령), 한 나라 두 국회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 지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 전문가들도 확언을 못하고 있지만 현상태가 변함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에 따라 한동안 소원했던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도 점차 기지개를 펴는 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속한 시일 내에 베네수엘라가 시련을 극복하고 중남미지역의 리더 국가로 거듭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각주>

1)쉽게 설명하자면 베네수엘라 석유매장량은 전 세계 인류가 지금까지 사용한 석유보다 더 많은 양을 갖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중부 오리노코(Orinoco) 유역의 중질유 매장량까지 합치면 1조 배럴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우리의 상상을 초월케 한다.

2) 최근 10년간 그래프의 모습은 거의 수직 낙하로 보면 된다.

3) 물론 이러한 뒷면에는 비록 차베스 정부하에서 정부기구와 경제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고유가 시대의 석유수출 등을 포함한 풍부한 국가자원으로부터 얻어진 재정 수익을 전국민들에게 재분배해 줌으로써 국민들의 선심을 샀다는 점과 또한 야권 측으로부터 차베스 정권의 부정투표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4)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두로가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불투명성이 제기하면서 베네수엘라 야당과 국회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유럽연합, 미주기구(OAS) 등 국제기구와 미국 등 주요 국가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우리나라 역시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같은 해 1월 국회의장이자 야권으로부터 지도자로 선출된 과이도(Juan Guaidó)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해 준다.

5) 베네수엘라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말한다.

6)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3년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은 438,384백만불에서 2020년 48,610백만불을 기록하며 92.4% 하락율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