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평화과정 : 고백과 진실의 고통

추종연 주콜롬비아대사

2020년 하반기에 콜롬비아 언론이 가장 많이 그리고 비중 있게 다루는 이슈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Covid19 동향과 이로 인한 국내경체침체를 어떻게 회복시키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간에 체결된 평화협정의 이행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Covid19 문제는 앞으로 유효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면 수그러들 수 있는 세계 공통의 일시적인 문제인 반면, 평화협정 이행은 지극히 콜롬비아적이며 콜롬비아의 미래가 달린,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다. 필자는 2011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 3년 반 콜롬비아에 근무했다. 5년 반 만에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온 필자로서는 평화협정 이행상황이 어떤지 매우 궁금했다. 첫번째 근무 시에는 평화협상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에도 협상에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반세기 내전종식에 대한 콜롬비아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가 더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2020년 6월 초 보고타 부임 이후, 코로나로 대면접촉 활동이 줄어들고 업무가 영상대화로 대체되면서 콜롬비아 언론과 잡지를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글은 지난 5개월간 섭렵했던 각종 자료 일부를 요약한 기록이다. 물론 이 글에는 필자의 관찰도 곳곳에 들어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백) 2020년 9월 14일 두 개의 서로 다른 고백이 콜롬비아 국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납치는 살인입니다. 정체성을 빼앗아가고 존엄성을 박살내며 이름과 목소리마저 강탈하고 인간존재마저 말살시킵니다. 납치는 가장 나쁜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납치에는 모든 악행들이 다 포함되어 있고 평생의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무장단체 납치범들의 도덕적 회복 가능성에 대하여 “그러한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그들이 솔직함과 동정심으로 스스로를 직시하면서 자신들의 행위가 이념적 정당성이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납치로 인한 고통가운데 가장 큰 것은 거짓(mentira)이며, 덧칠하지 않은 진실이 필요합니다.” FARC에 납치되었다가 6년 4개월 만에 구조된 녹색산소당 소속 대통령선거 출마자 잉그리드 베탕크루(Íngrid Betancourt)가 진실규명위원회(Comisión de la Verdad)에서 1시간 30분 동안 행한 증언의 일부다.

“우리들이 저질렀던 납치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탈했습니다. 납치는 저희들이 행했던 가장 심각한 오류로 이를 깊이 반성합니다. 그와 같은 행위는 납치희생자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정당성과 우리들에 대한 신뢰에도 죽음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학수고대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그들의 아들 딸, 부모,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이제 이해합니다. 아빠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암치료 병상에서 죽어간 안드레스 펠리페 페레스 12살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부끄러움이 심장을 찌르는 비수처럼 여겨집니다. 우리의 나머지 삶의 시간을 실종자 유해를 찾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평화정착을 위해 투쟁하며, 모든 폭력을 해체하는 데 쓰겠습니다.” 이는 잉그리드 베탕크루가 위와 같이 고백하던 날에, 평화협정으로 해체된 FARC 지도부 8명이 자기들의 납치행위에 대해 발표한 대국민 공개사과문의 일부이다. 이는 FARC가 그들의 납치행위에 대해서 최초로 시인(是認)한 것이며 동시에 최초의 사과(謝過)이기도 하다 .

그런데 그러한 고백과 진실을 대하는 콜롬비아 국민들의 마음은 매우 복잡한 것 같다. 일부는 그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부는 진실에 관심이 없거나 또는 진실을 알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진실이 또 다른 증오를 생산하여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잉그리드 베탕크루는 ‘진실의 위기(crisis de la verdad)’라고도 했다. 거짓인지 여부를 아무도 확인하지도 않고 모두가 그저 알리고 싶은 것만을 소리쳐 알린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고백들이 불확실하고 혼돈스럽기도 하며 또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전 게릴라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진실을 얘기했다고 하더라도 그 진실이 의도적으로 가공되거나 완곡하게 변형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진실을 밝힘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콜롬비아가 아직 진실에 직면할 준비가 덜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백과 진실은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다.

(‘전환적 정의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찾기 위한 노력이 어렵게 시작되었고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 진실규명위원회가 있다. 프란시스코 데 룩스(Francisco de Roux) 예수회 신부가 그 일을 맡고 있다. 진실규명위원회는 2017년에 설립되었다. 이는 ‘평화특별재판권제도(JEP)’ 및 실종자찾기지원단(Unidad de Búsqueda de Personas Dadas por Desaparecidas/UBPD)과 더불어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전환적 정의(justicia tansicional, 轉換的 正義)’를 이끄는 3두 마차다. JEF는 인권범죄 사건을 조사하고 고발하며 판결을 내리는 총괄적인 사법기능을 갖는 조직체다. 콜롬비아 평화과정의 4대 원칙인 진실(verdad), 정의(justicia), 보상(reparación) 및 재발금지(no repetición)을 구현하기 위한 중심기관이다. 전환적 정의란, 전쟁이 끝난 후에, 조직적인 인권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정치적이고 사법적인 제도를 총칭한다. 인권범죄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하여금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와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국민화합을 도모하는 데 전환적 정의의 목적이 있다. 콜롬비아에서 진실규명위원회는 수많은 증언을 토대로 지난 반세기 내전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진실로 향한 길은 항상 복잡하며 어려운 화해 과정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다. 진실을 말하는 데는 늘 두려움이 따른다. 어느 나라에서든 증오와 폭력행위를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다. 100년 이상의 인종폭력을 경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만델라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보복의 갈증과 유혹을 떨쳐내고 국민화합을 이뤄냈다.

JEP는 인권범죄에 관한 정보를 수집 및 분별하여 진실을 가리고 처벌의 정도를 정한다. 반세기 내전기간 동안 좌익무장세력 뿐만 아니라 우익민병대, 마피아 세력, 공권력 등에 의해 수많은 인권범죄가 행해졌다. 인권침해에 은밀하게 동조한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도 있다. 따라서 JEP가 그 모든 사건들을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다. JEP는 조직 내에 “진실책임인정법정(Sala de Reconocimiento de Verdad y Responsabilidad)‘을 두어 피해자들로부터 접수되는 수많은 고발 건 중에서 JEP가 다룰만한 사안을 미리 정하도록 하였다. JEP내에는 진실책임인정법정을 포함하여 사건을 심의하는 3개의 법정(Sala)이 설치되어 있다. 사안이 정해지면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당사자들로부터 증언을 청취한다. 증언청취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다. 이 단계에서는 증언의 진실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며, 범죄혐의자들도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자료분석 및 증언청취가 끝나면 JEP는 진실여부를 판단하며 혐의자의 구체적인 책임여부를 문서화하고 결과를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이 시점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 이후에 JEP는 범죄혐의자들을 공개법정에 소환하며 이들은 책임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거부한다. 또는 무장투쟁과 관련 없는 사안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만약 책임을 인정할 경우, 전환적 정의 제도에 입각하여 결의(resolución)를 채택하고 ’평화 재판소(Tribunal de Paz)‘에 감경된 형량을 권고한다. 평화재판소는 JEP내 최종 판결기관이다. 만약 혐의자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진실책임인정법정‘은 해당 사건을 JEP내에서 검찰 역할을 하는 ’조사고발단(Unidad de Investigación y Acusación)‘에 이첩한다. 사건을 이첩 받은 조사고발단은 추가조사를 거쳐 해당 혐의자를 평화재판소에 고발하며, 범죄가 밝혀질 경우 동 혐의자는 전환적 정의 제도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으로 다루어져 20년 이상의 형을 받는다. 범죄혐의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실규명에도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해당 범죄협의자의 자발적 증언을 청취하기 까지 8-10개월이 소요되며, 최종 판결까지 약 3년이 걸린다.

지난 3년간 JEP는 430건의 진술을 청취했고 107건의 공개법정을 열었고, 12,600명을 JEP의 관할권 아래서 다루게 되었으며, 조직적이며 대규모인 인권침해 사건은 310개를 접수하였다. 현재 JEP는 대형사건(macrocasos) 7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중 납치사건과 거짓 전과(falsos positivos)에 대한 결정이 2020년말 경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밝혀지게 될 많은 진실과 대형사건에 관한 JEP의 결정은 국내정치권의 극단대립(polarización) 등 많은 파장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도권에 편입된, 즉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된 전 FARC 지도자들이 심각한 범죄에 연루되었을 경우, 과연 이들의 상.하원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평화협정의 이행이 과연 온전할 지도 미지수다. JEP는 지금 엄청난 역사적 및 정치적 부담을 어깨에 짊어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JEP는 FARC가 콜롬비아의 정치인 알바로 고메스(Álvaro Gómez)를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알바로 고메스는 라우레아노 고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보수당 소속의 저명 정치인인 동시에 언론인이며 대통령선거에 3회나 출마한 적이 있다. 그는 1995년 강의를 마치고 세르히오 아르볼레다 대학교 정문을 나오다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었다. 서한 소식이 공개되자마자 시민대안혁명당(Fuerza Alternativa Revolucionaria del Común/FARC)은 알바로 고메스와 같은 위대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커다란 실수였으며 그 책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즉각 발표했다. 시민대안혁명당은 평화협정에 따라 전 FARC 무장단체가 조직한 정당이다. 아울러 그들은 미래세대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겸손함으로 사망한 정치인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가 소속했던 정당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알바로 고메스가 살해된 지 25년만에 고백이 이루어지고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 기간 수많은 조사가 행해졌었으나 사건이 미궁 속에 빠졌고, 대통령 등 집권세력이 살해사건에 관여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JEP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콜롬비아 국민들이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숨겨지고 가려졌던 암흑의 역사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다.

(콜롬비아 내전의 상처) 52년간의 내전은 콜롬비아 땅과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26만명이 사망했다. 그 중 21만명이 민간인이다. 3만 7천명이 납치되었다. 8만명이 실종되었고 실종자 중 7만명의 생사를 아직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 당시 실종자와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부 당시의 실종자를 합치면 3만 3천명 정도 된다. 콜롬비아 내전 실종자 규모가 그보다 더 크다. 700만명 이상의 콜롬비아 국민이 위협이나 두려움으로 정든 고향을 등졌다. 콜롬비아에서는 이들을 강제이주자(desplazados forzados)라고 부른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의하면 콜롬비아 강제이주자 규모가 시리아에 이어 두 번째다. 일부는 두려움으로 또는 혐오감으로 아예 콜롬비아를 떠났다. 무장단체들에 의한 수많은 전쟁 성범죄가 저질러졌다. 많은 미성년자들이 강제로 정글로 끌려들어가 총을 들었다. 불법무장세력과 오랜 기간 전쟁을 해온 콜롬비아 군과 경찰에 의한 범죄도 속속 밝혀졌다. 성범죄도 저질러졌고 민간인 학살도 있었다. 살해된 민간인이 게릴라로 둔갑되어 전공(戰功)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이를 ‘거짓 전과(falsos positivos)’라고 부른다. 반정부무장세력 및 불법마약세력과 반세기 내전을 겪으면서 국력의 대부분이 소진되었다. 빈곤, 불평등, 부정부패, 경제개발 등에 사용되어야할 재원이 전쟁에 소진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빈곤이 더욱 악화되었고 불평등이 심해졌으며 부정부패가 늘어났다. 특히 불법무장세력과 마약조직들은 코카인 거래로 벌어들인 자금을 정치인들에 대한 뇌물로 사용했다. 과거 한 때 콜롬비아에서는 ‘돈 아니면 납(plata o plomo)’이란 말이 유행했다. 돈을 받든지 죽음을 선택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다. 마피아들의 선거개입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으며, 많은 선거공직자가 마피아의 돈으로 당선되었다. 마피아의 돈을 받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아직도 그들과 연루된 정치인 이야기가 회자된다.

2003년 1월부터 3월까지 카사나레 주(州)의 레세토르라는 한 마을에게 60여명의 주민이 하나 둘 사라졌다. 당시 그 마을에 2,357명의 주민이 있었으니 3% 주민이 실종된 것이다. 나중에 부이트라게뇨스(Buitragueños)라는 우익민병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는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실종스토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국제적십자사는 2019년 한 해 동안 콜롬비아에서 93건의 강제실종자(desaparición forzada)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2016년 평화협정체결 이후에도 강제실종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과 더불어 또 다른 고통에도 시달리고 있다.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무장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종과 관련된 여러 슬픈 이야기들이 언론에 보도된다.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신원미상의 사망자 유해들을 양자(養子)로 삼아 그들의 영혼을 위해 늘 기도하는, 강제실종자 가족이 포함된 여성모임이 있다고 한다. 마리아 이사벨 에스피노사라는 이름의 한 어머니는 15년 동안 분쟁지역을 흐르는 카우카 강에서 떠내려 오는 200여구의 시신들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자녀들이 그녀에게 그만두라고 수차 얘기했지만, 잃어버린 자녀들의 소식을 학수고대하며 눈물을 흘리는 실종자 어머니들이 머리에 떠올라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콜롬비아 의회는 2011년 제정된 ‘희생자 보호 및 토지반환법(Ley de Víctimas y Restitución de Tierras)’의 연장 문제를 논의 중이다. 이 법은 2016년 FARC와의 평화협정 체결에 따른 후속조치는 아니며, 별도의 내전피해자 보상조치다. 동 법의 이행을 점검하는 이행점검위원회가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발표해왔으며, 9년이 경과한 현재 보상대상자로 구별된 희생자 720만명중 12%에 해당하는 88만명에 대해서 보상이 이루어졌다. 2021년에 시효가 종료되는 이법에 대해 10년 연장안이 의회에 상정되어 있다. 당초 강제이주자들은 보상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었으나 2013년 헌법재판소가 이들에게도 경제적 보상을 해주라고 판결하는 터에 예산문제가 생겼다. 콜롬비아 정부는 2020년 1/4분기까지 희생자 보상에 118조 페소를 지출했다. 미화로 환산하면 320억 달러 상당액이다. 2030년까지 동 법 이행을 위해 앞으로 필요한 예산이, 아직 미지급된 희생자 보상금을 포함하여 1,27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이 예산은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보상금과 더불어 주택, 귀환 및 정착, 교육, 공공보건 등 14개 분야에 집행된다.

2016년 평화협정 후속조치 이행에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2018년에 향후 15년간 평화협정 이행에 필요한 예산으로 360억불로 추산했다. 최근 콜롬비아 의회가 승인한 2021년도 정부예산 총액은 약 872억불이다. 그 예산 중 192억불은 채무상환에 쓸 돈이다. 평화협정 이행을 총괄하는 콜롬비아 대통령실 에밀리오 아르칠라(Emilio Archila) 수석자문관의 걱정이 크다. 현재 정부의 주머니 사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Covid19로 당장 2020년도 세수가 66억불이나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부채를 계속 늘리는 것도 부담이다. 아르칠라 수석자문관이 요청한 2021년도 평화협정 이행 예산이 항목별로 15-50%정도만 반영되었다. 현재 콜롬비아에는 빈곤율 감축, 사회불평등 해소, 마약퇴치, 일자리 창출, 부패방지, 연금재정 확보 등 산적한 현안이 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에도 바쁜데 과거청산에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 지금 콜롬비아 정부에게는 Covid19로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재원마련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평화협정 이행 평가)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콜롬비아 국민들은 평화협정 체결 이전과 이후에 많은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들의 의견이 평화과정을 둘러싸고 여전히 갈라져 있고, 평화협정 이전이나 이후나 테러사건이 발발하고 있으며 불법무장세력이나 불법마약세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평화협정의 미래에 대한 집단적 회의주의(collective skepticism)가 있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 무관심의 분위기도 있다.

유엔은 콜롬비아 평화협정이 지금까지 체결된 어떤 평화협정보다 포괄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와 같은 호평가의 이유로 콜롬비아 평화협정이 콜롬비아가 필요로 하는 구조적인 개혁을 담았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한 점을 들었다. 아울러 진실, 정의, 보상 및 재발방지라는 4개의 원칙에 의거한 확고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국제형사법원(ICC)의 설립 준칙인 로마협정에 따라 범죄자들을 ‘전환적 정의’ 시스템 의거 처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로마협정은 인도주의 범죄(lesa humanidad)에 대한 처벌면제(imunidad) 불허용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늘 그렀듯이 콜롬비아 평화협정도 이행과정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노틀담 대학교의 Knoc 국제평화연구소는 52년간의 분쟁을 종식시킨 콜롬비아 평화협정의 이행 3년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2020년 6월 발간했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평화협정 내용의 25%는 완전히 이행되었고, 15%는 중간 정도 이행되었으며, 36%는 이행 초기단계에 있고, 나머지 24%는 전혀 시작도 못했다고 밝혔다.

평화협정 이행의 부진문제를 두고 책임공방이 있다. 산토스 전 정부는, 자신들이 매우 좋은 협정을 만들어냈으나 현 정부가 과거 FARC 점령지역을 빨리 확보하지 못하여 그 지역을 다시 무장단체가 장악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 정부가 불법 코카 재배자들에게 잘못된 보조금을 주어 오히려 코카경작지가 확대되었다고 비판한다. 일부 농민들이 정부 보조금을 타내려고 일부러 코카 재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지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국제사회와 국내 정치세력으로부터 평화협정 이행 촉구 압력을 받고 있는 반면, 여당인 민주중도당(Centro Democrático) 세력은 평화협정 이행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콜롬비아 정부가 양측의 압력에 직면하여 무장해제자들의 사회편입 문제에서는 적극 지원을 하되 구조개혁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지연작전(operación tortuga)을 펴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 두께 대통령 정부의 고민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그러한 고민 가운데서도 콜롬비아 클라우디아 블름(Claudia Blum) 외교장관은, 두께 대통령 정부가 ‘법에 입각한 평화정책(Politica de Paz con Legalidad)을 견고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며 평화협정에 따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유엔안보리에서 밝혔다. 두께 대통령도 2020년 11월 초 전 FARC 지도자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 대화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평화협정 이행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혔다.

민주중도당은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했던 세력이 결집되어 만들어졌으며, 2018년 대선에서 현 이반 두께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민주중도당의 실질적인 리더다. 우리베 대통령은 집권 8년 동안 FARC 등 불법무장세력과 불법마약그룹을 척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이들의 활동을 현저하게 축소시키는 데 공헌했다. 민주중도당은 지금도 평화협정 이행에 비판적이며 전환적 정의 제도의 핵심인 JEP의 해체를 주장한다. 두께 대통령 정부도 2019년 5월에 JEP 설립법안 수정을 시도했었으나 의회와 헌법재판소의 반대로 실패한 적이 있다. JEP 설립법은 그 다음 달인 6월에 공표되었다. 특히, 우리베 전 대통령은 JEP의 철폐를 위한 국민투표를 주장한다. 전 무장게릴라 지도자들에 대한 처벌면제(impunidad)나 처벌경감을 강력히 반대한다. 얼마 전부터 우리베 전 대통령이 과거 우익민병대와 연루된 사건 및 그 사건에 관련된 증인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가 가택연금에 처하게 되자 민주중도당은 평화협정 이행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강화했다. 게릴라들과의 전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온 정치인은 가택연금에 처하게 되고, 반면에 폭력을 일삼던 게릴라지도자들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상황이 과연 옳으냐고 항변한다. 그들은 애초부터 FARC를 불법 무장세력으로 규정하고 화해가 아니라 척결의 대상으로 보았다. 산토스 대통령 정부가 그들과 협상테이블에 같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를 수용하지 못했다.

평화협정 체결에 따라 무장게릴라단체가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시민대안혁명당(FARC)은 평화협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2017년 8월 27일 보고타시 소재 곤잘로 히메네스 케사다 콘벤션 센터에 무기를 내려놓은 수백명의 전 게릴라들이 모였다. 신설되는 당의 명칭으로 ‘시민대안혁명당(FARC)’과 ‘새로운 콜롬비아(Nueva Colombia)’가 제안되었으나 전자가 채택되었다. 대국민인지도를 감안한 결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민대안혁명당은 평화협정에 따라 상원과 하원에 각각 5석의 의석을 보장받았으며 2022-26 임기에도 지금과 같이 동일한 의석을 보장받게 된다. 제도권에 들어와 처음으로 2018년 3월 11일 총선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들은 겨우 8만5천여표만 얻었다. 이는 총 유권자의 1%로 국민들로부터 냉혹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일부 성과도 있었다. 2019년 볼리바르 주(州) 작은 도시 투르바코 시장선거에서 ‘FARC의 가수(el cantante de las FARC)’로 불렸던 훌리안 콘라도(Julián Conrado)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제도화 과정에 커다란 오점이 생겼다. FARC 주요 지도자였던 이반 마르케스(Iván Márquez)와 헤수스 산트리치(Jesús Santrich)가 제도권에서 이탈하여 다시 정글로 들어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2019년 8월 다른 17명의 전 FARC 중간간부들과 함께 공개된 영상에 나타나 ‘세군다 마르케탈리아(Segunda Marquetalia)’ 로 명명되는 무장단체 창설을 선언했다. 이들은 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전 FARC 이탈자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우는 중이다. 무장단체 창설 선언 후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당초 기대대로 새로운 FARC로 변모되지 못했으나, 수백명의 전 게릴라들을 모으고 국민해방군(ELN)과도 협력해서 기존의 불법무장세력들과 세력경쟁을 하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 세력이 크지 않을지라도 세군다 마르케탈리아가 콜롬비아의 평화정착에 장애물로 대두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 국무부는 2020년 9월말 마르케스와 산트리치 두 사람을 체포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천만불까지 보상금 지불을 약속했다.

(콜롬비아의 공공치안 문제) 평화협정 이행의 부진과 평화협정에 대한 콜롬비아 국민들의 우려의 배경에는 공공치안문제가 있다. 통계숫자로 보면 평화협정 체결 이전보다 치안사정이 많이 나아져 보인다. 납치, 살인, 강도 등 범죄행위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국민이 느끼는 안전체감지수는 높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당초 평화협정 체제에 들어왔던 FARC 세력의 일부가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들 FARC 이탈자들은 테러와 폭력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막스레닌주의와 해방신학에 뿌리를 둔 좌익 무장단체 국민해방군(ELN)과 우익민병대(paramilitares) 세력이 활동중이다. 무장해제된 후 미국에 인도되어 십수년간 형을 살다가 석방된 우익민병대 지도자들이 속속 콜롬비아로 입국하고 있다. 그들이 과거의 조직들을 복원시키고 있는 과정에서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우리베 대통령 정부는 2005년 ‘정의와 평화의 법(Ley de Justicia y Paz)’을 제정하여 우익민병대의 무장해제 및 이들의 사회편입을 지원했다. 동 법은 2009년 초까지 무장해제된 5만명의 게릴라들을 관할한다. 당시 우익민병대 32,500명, FARC에서 15,000명 그리고 ELN에서 2,500명의 무장대원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 이외에도 과거 무장단체의 잔당들이 조직한 GAO(Grupos Armados Organizados), GAOR(Grupos Armados Organizados Residuales) 등 세력과, 불법 마약단체들의 통칭인 바크림(Bandas Criminales/Bacrim)도 활동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이들 불법무장세력 및 마피아는 1만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마약생산 및 거래뿐만 아니라, 불법 금광개발, 강탈 등으로 활동자금을 확보한다. 이들 일부는 베네수엘라 땅에 은거하면서 콜롬비아를 넘나들며 테러를 자행하고 있고 마두로 정부가 이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콜롬비아 시민보호청(Defensoría del Pueblo) 통계에 의하면 평화협정 체결 이후 2019년 말까지 500명 이상의 지역사회 지도자와 인권운동가들이 살해되었다. 사회정착과정의 무장해제자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무장해제자측 통계에 의하면 2016년 11월 평화협정 발효 이후 2020년 11월 현재까지 237명이 살해당했다. 콜롬비아 검찰측 통계도 200명을 상회한다. 문제는 무장해제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해를 거듭하면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들어 7월 현재까지 77명이나 살해되었다. 콜롬비아 검찰은 그 배후로 평화협정 이탈세력과 GAOR를 지목했다. 3,500-7,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는 골포 세력(Clan de Golfo)도 많은 테러행위에 간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가이탄 자위대(Autodefensas Gaitanistas)로 부르기도 한다. 제도권으로 들어온 시민대안혁명당은 무장해제자들을 말살하려는 조직적인 음모가 있으며, 정부의 무장해제자들에 대한 안전조치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한다. 살해사건의 75%정도가 과거 무장게릴라 활동지역이었던 카우까, 안티오키아, 나리뇨, 노르테 데 산탄데르, 카케타, 푸투마요, 메타 및 초코 주(州)를 중심으로 발생되고 있다. 산토스 정부의 지적대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의 권력공백을 정부가 신속히 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무장해제자 재활지역(Espacios Territoriales de Capacitación y Reincorporación/ETCR)에 대한 공격 또는 위협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몇 개월 전 이투앙고 재활지역 무장해제자 82명의 집단 엑소더스가 벌어졌다. FARC 이탈세력과 골포 세력이 그 지역에 침투하여 무장해제자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6대의 버스에 탑승하여 밤새도록 352킬로미터를 이동하여 탈출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새로운 지역을 급히 마련해서 이들의 정착을 지원했다. 메타 주(州) 엘 디아만테에 거주하던 20명의 무장해제자들도 살던 곳을 탈출했다. 현재 평화협정에 따라 무기를 내려놓은 13,349명의 전 게릴라들의 상당부분이 24개의 재활지역(ETCR)에 거주한다. 유엔의 평화협정 이행 검증단은 이와 같은 일련의 폭력행위들이 콜롬비아의 평화정착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콜롬비아 평화과정에 대한 한국의 기여) 한국도 3년간의 6.25 전쟁으로 수백만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은 우리로서는 콜롬비아 국민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다. 6.25전쟁은 전면전이라 게릴라전인 콜롬비아 내전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지만, 한반도에서도 6.25전쟁 중에 게릴라 전투가 있었고, 좌익과 우익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했다는 점에서 콜롬비아 내전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6.25 전쟁에 5,062명의 전투병력을 보내 우리의 생명을 구한 나라다. 그러기에 콜롬비아 국민의 어려움과 아픔에 더욱 공감이 간다.

한국정부는 지난 10년간 콜롬비아를 공적개발원조(ODA) 중점 협력국으로 지정하였고, 국별협력전략(Country Partnership Strategy/CPS)을 만들어 특별하게 대콜롬비아 지원을 관리했다. 금년까지 유효한 대콜롬비아 제2기 2016-2020 국별협력전략 4개 항목에 평화정착이 포함된다.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에 따라 2020년 10월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이 확정된 콜롬비아에 대한 협력사업은 총 24개다. KOICA 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및 환경부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개발원조업무 총괄기관인 국제협력청(Agencia Presidencial de Cooperación Internacional/APC)이 발간한 ‘2019년 대콜롬비아 무상국제협력 현황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도에 우리나라가 17.75백만불을 콜롬비아에 공여하여 전체 공여국 중 10위를 차지했다. 스웨덴, 유엔기구,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를 앞선다. 이는 콜롬비아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지위를 말해준다.

24개 사업 중 콜롬비아 평화정착 관련 사업은 3개다. 분쟁피해지역 개발, 내전피해자 정착지원 및 불법마약작물 대체지원 사업으로, KOICA는 이 사업들을 유엔난민기구(UNHCR), 세계식량계획(WFP) 및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엔기구들은 콜롬비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와 현지사정에 밝으며 프로젝트 발굴에 전문성이 있다. 평화정착 사업들은 분쟁지역에서 진행되는 지라 늘 위험성이 수반된다. 유엔기구들은 그러한 위험에 대처하는 데도 많은 경험이 있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콜롬비아를 평화정착의 성공모델로 삼고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콜롬비아가 금년도에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하여 대외원조 대상에서 콜롬비아를 제외시킬 만도 하지만 활동을 지속하는 추세다. 대콜롬비아 지원전략의 중점을 평화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에 대한 한국의 지원은 인도주의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평화증진 노력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에 대한 보은(報恩)의 의미도 있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콜롬비아 국민들의 그러한 노력에 연대감을 표명과 더불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다. 콜롬비아 땅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굳건한 평화가 구축되는 데 한국의 지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픔을 딛고 진실을 추구하며 그 진실을 기반으로 국민화합을 이루고 또 국가발전을 추구하는 콜롬비아 국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를 소망한다.

(콜롬비아가 직면한 미래과제) 평화협정의 주역들은 평화협정 이행에 15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행 실태를 감안할 때 10년은 족히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평화협정 이행 비용 확보도 만만치 않다. 금년 초에 Covid19가 콜롬비아를 강타했다. 금년 5월 한 때 실업률이 20%대를 넘어섰다. 개선되어온 빈곤율도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정책이 보건안전 보다 경제 활성화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리는 모양새다. FARC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불법무장세력 ELN과의 평화협상에도 진전이 없다. 여당인 민주중도당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ELN과의 협상이 진전되기가 쉽지 않다. 2019년도 불법 코카 재배면적이 2018년보다 감소했으나 평화협정 이전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확대되었다. 코카인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마피아세력도 축소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정치에도 대립이 심각하다. 평화협정을 두고 국론이 양분되어 있다. 여소야대 상황이라 정부가 개혁정책을 추진할 동력도 약하다. 콜롬비아 정부의 시급한 과제는 일단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콜롬비아는 과거의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일부 정치세력은 가끔 역사를 증오와 전쟁을 영속화하는 도구로 쓴다. 어떤 때는 망각이 과거의 폭력을 극복하는 도덕적 대안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찾는 것은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역사를 돌아볼 때 지금까지 체결된 평화협정의 40%가 3년 만에 다시 폭력상황으로 복귀했고, 50%가 5년만에 파기되었다고 한다. 평화정착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콜롬비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균형의 마법이 필요하며 국민들의 지혜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콜롬비아 평화과정을 주시하며 그 과정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