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볼리비아 대선 과정과 국내 언론의 인식 문제

김학재 대사(볼리비아)

* 이 글에 담긴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적인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I. 들어가는 말

2019.10.20 볼리비아에서는 2020-25년 임기의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에보 모랄레스 정권의 부정 선거 조작으로 대통령이 망명했고, 극도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거쳐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국 안정화와 재선거일정 확정이 이루어져 오는 5.3일 다시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 글에서는 모랄레스 정권의 집권연장 추이와 볼리비아의 정치적 혼란시기 동안의 급박했던 정치적 변동 및 갈등을 살펴보고, 이후 불안정한 임시정부 체제하에서의 사회주의운동당(MAS) 중심의 구정권 지지 세력에 의한 사회불안 조장 및 임시정권 붕괴시도, 이와 더불어 임시정부의 대응조치들을 알아보고 이 과정을 취재하던 국내언론의 보도내용과 실제 현장모습과의 괴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현상적이고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일차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언론의 특성상 볼리비아는 심한 혼란 이후 빠른 안정화 정착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정치적 후진성과 폭력성이 난무하는 나라라는 오도된 인상으로 더욱 강하게 남게 되었다고 보여졌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II. 모랄레스 정부의 정권연장 추구 및 부정선거로 얼룩진 볼리비아 대선

1. 모랄레스 정부의 지속적인 정권연장 추구

2006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에 오른 에보 모랄레스 전대통령의 집권 여정은 한마디로 정권연장의 무리수로 이어졌다. 2009년 자원민족주의와 외부간섭 배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다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국호를 볼리비아공화국에서 볼리비아다민족국가로 변경하고, 신헌법에 따른 1차(2009-2014) 및 2차(2014-2019) 집권에 성공한다.

2009년 신헌법은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집권을 위해 모랄레스는 2016년 2월 헌법상 3선 출마 제한 규정 폐지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 정권연장을 도모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결과 51%가 반대함으로써 집권연장 계획은 무산된 듯 보였다. 모랄레스 정권은 급기야 헌법상 3선 금지 규정이 출마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2017년 모랄레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민투표 부결 결과를 존중하라는 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 정부는 이후 정치조직법을 개정하여 전에 없던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고 일련의 선거 일정을 강화함으로써 후보 적격성 논란 문제로부터 관심을 자연스레 선거일정으로 돌리려했다. 특히나 선거대법원에 의한 후보자 적격심사를 두고는 정해진 기일보다 앞서 선거대법원이 시위대를 피해 심야에 구청사에 모여 비밀리에 기습적으로 적격심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모랄레스의 출마를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2. 부정선거로 얼룩진 2019 볼리비아 대선

이렇게 해서 무리하게 사실상 4선에 도전한 에보 모랄레스 전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조직적인 선거조작에 가담하였다. 볼리비아 선거법상 1차 투표에서 1위가 50% 이상을 득표하거나, 40% 이상이면서 2위와 10% 이상의 격차가 나면 1차 투표에서 승리가 확정된다. 10.20 선거 당일 저녁 개시된 신속투표가 83%의 개표율을 보일 시점에서 43%를 획득한 모랄레스와 2위였던 야권의 메사 후보간 차이는 7.3%로 개표 추세를 보아 2차 결선투표가 확정적이어서 야권은 2차 투표에서 모랄레스 정권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에 환호했다. 하지만 당일 밤 11시 30분을 계기로 아무런 설명없이 개표가 중단되었고, 만 하루가 지나 속개된 개표 결과는 누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게 1, 2위 간 격차가 10.11%로 모랄레스의 승리로 발표되었다.

이로부터 이전의 국민투표 결과 존중 시위 세력이 중심이 되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민주시위가 촉발되었다. 시민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도로봉쇄를 하면서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어갔다. 주요 도로 곳곳에 줄을 쳐 차량의 통행을 막으면서 부정선거에 항의를 했다. 이들이 친 줄을 현지어로는 pita라고 하는데 축소형인 “pititas”가 시민저항운동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평화적 저항운동은 3주간이나 지속되었다. 교통이 사실상 마비되어 시민 스스로도 불편했지만 모두 이를 감수하고 지지를 보냈고, 갈수록 항의가 거세지자 모랄레스 대통령은 선거부정을 부인하면서 미주기구(OAS)에 의한 부정 여부 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OAS 조사단은 심층적인 조사 후, 실제로 개표조작, 선거인 명부 조작, 개표 프로그램 조작 등의 확실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담은 임시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부정선거 조작이 공식 확인됨으로써 모랄레스 재집권을 저지하려는 시민운동 참여자들과 선거부정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고 사후 보복을 두려워한 각료, MAS당 의원 등 주요 정부인사들이 줄지어 사퇴를 발표하였으며, 경찰과 군이 항명함으로써 결국 모랄레스 대통령이 신변의 위험마저 느껴지는 상황에서 급히 사퇴를 발표하고 멕시코로 망명의 길을 택했고, 혼란한 정국 속에 임시정부 체제가 이루어졌다.

이런 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 승리의 환호도 잠시였다. 평화적인 시민운동은 곧바로 모랄레스 지지자들에 의한 극도의 폭력적 양상으로 변모하였다. 11.10 모랄레스의 사퇴 발표 직후부터 시내 곳곳에서 폭력, 방화, 약탈 등으로 치안부재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상점들이 약탈당하고, 시민운동가의 자택이 방화되고, 시영버스 64대가 전소되기도 했다. 각 마을 단지마다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폭도들의 약탈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MAS당에 의해 동원된 폭력적 시위대가 시민들을 위협하고 친모랄레스 광산노조 시위대는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시내중심에서 위협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 상원 제1부의장 모두 사퇴한 가운데 상원 제2부의장이었던 쟈니네 아네스 의원이 11.12 헌법 해석에 따라 임시대통령직을 승계하고 취임하였다. 모랄레스 지지세력,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좌파국가들은 쿠테타로 규정하고 승계도 불법적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임시정부는 정국안정화와 조기 대통령 선거 재실시 일정 마련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질서안정을 위한 조치를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동시에 MAS 당을 포함한 사회제반세력과의 회합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신속하게 2주내인 11월말 정국안정화 및 선거일정 마련에 성공한다.

III. 민주시민운동의 역할과 평가

혼란한 정국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적어도 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보자면 과거의 에보 모랄레스의 반제국주의, 반신자유주의, 폐쇄적인 자원민족주의 성격과 장기 독재 성향을 탈피코자한 평화적인 시민운동에 따른 민주질서 성취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장기집권에 반대하고 민주질서 회복을 위한 시민운동은 2016년 모랄레스가 대통령 출마 제한 규정을 폐지코자 한 국민투표 부결 이후 지속되어왔다. 당시 국민투표가 2월 21일 실시되어 현지에서는 21F(21 de febrero) 운동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운동이 그동안 폭발적이지도 않았고 참여도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지만 2019.10월 대선을 계기로 부정선거 의혹이 현실화되자 폭발적인 시민저항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과거 우리의 촛불시위에 버금가는 자발적이면서 강력하고 조직적인 시민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평화적이고 집단적인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결국 장기집권을 추구했던 철옹성과 같던 정권을 무너뜨리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랄레스를 강력히 지지해오던 원주민, 농민, 코카재배계급의 맹목적인 추종과 저항, 임시정부를 전복하려는 거대한 폭력시위와 도시 봉쇄로 심각한 치안불안과 식료품, 연료 부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민운동세력은 이들과 물리적인 충돌 없이 임시정부를 지지했으며, 임시정부의 안정화를 위한 과감하고 빠른 행보로 마침내 대화를 통한 사회분위기 달성과 재선거를 위한 일정 마련 및 이의 실현을 위한 각 정치 세력간 노력이 성과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다만, 새로운 선거일정에 따른 대선 경쟁에서 시민운동 세력은 기존의 정당과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6개의 정당체로 나뉘어 대선에 도전하게 되어 사회주의운동당(MAS)를 포함한 7명의 후보자가 대선에 출마하게 됨으로써 과거 구정치 현상을 일소하고 새로운 시민운동 세력에 의한 구체적인 정권창출이라는 대의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IV. 볼리비아 사태에 관한 국내 언론보도의 특징

볼리비아 사태에 관한 국내언론의 전체적인 보도 성향은 모랄레스 사퇴이후 모랄레스 지지자들에 의한 극도의 폭력적 상황에 중점이 주어졌고, 이러한 정치질서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던 시민저항운동에 대한 관심이나 평가가 전무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0.20 선거 실시 후 3주간에 걸친 시민운동은 굳건한 모랄레스 체제에 항거하는 평화적 시위에 주력하였고, 국내외 언론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은 선거부정 의혹에 관심을 둘 뿐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랄레스 사퇴 이후 극도의 혼란기에 들어가면서 비로서 수많은 국내외 언론들이 볼리비아를 주목하게 되었고, 이때 마침 주요 국내 언론사들도 특파원을 파견하여 취재가 이루어졌다. 특파원들의 취재는 실제 시위현장을 방문해 현장감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취재시점이 모랄레스 지지자들에 의한 반임시정부 시위가 극도에 달한 시점이어서 이러한 전정권 지지자들의 반동적 측면만이 부각되다보니 국내 독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민주질서 회복과정이라는 면보다 오히려 임시정부의 시위 탄압과 원주민 인권침해라는 오도된 모습을 전달하게 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 외에도 볼리비아 현장에 있으면서 더욱 아쉬운 점들은 국내의 일부 기고가들의 글을 인터넷을 통해 접해보면 다수가 편향적인 이념적 성향을 갖고 베네수엘라, 쿠바 등의 반볼리비아적인 시각을 대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고, 여하한 경우에도 공권력이 아닌 시민의 저항에 기인한 기존질서의 변경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법 쿠데타라고 규정하는 극단적인 체제안정론의 입장을 수용하고 대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언론보도와 일부 필자들의 기고를 종합적으로 볼 때 볼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전체를 후진적 정치질서와 저발전의 나라와 지역이라고 보는 인식이 국내에서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화되고 확산되었다고 생각된다.

V. 결론

흔히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얘기하듯 사회현상은 유기적인 성격이 있어 복잡다단하므로 어느 한 면 만을 보고 쉽게 정의를 내리기란 매우 어렵다. 한 현상을 두고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볼리비아 사태를 두고서는 크게 시민들의 민주투쟁의 승리라고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일부에서는 불법 쿠데타에 의한 비합법적 정권 승계라는 시각도 있었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전자의 입장에서 볼리비아의 정치변화는 지난 14년간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정권의 이데올로기적이며 개인숭배 성향마저 보인 비민주적 정치질서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후자는 에보 모랄레스와 이념적 유대가 깊었던 베네수엘라, 쿠바와 좌파성향 정부로 대립관계에 있던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기존 체제질서 유지를 강력히 옹호하는 일부 국가들에 의한 지지였고, 또한 일부 강경 좌파 성향의 언론인들이 현지사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주장한 소수의견에 한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볼리비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면서 특히 언론을 통해 국내에 전해진 볼리비아에 대한 인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해 보면 국내에서의 볼리비아에 관한 이미지는 오히려 이전 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판단된다. 선거 실시 후 3주에 걸친 시민투쟁에 관해서는 보도가 거의 없다가 에보 모랄레스 퇴진 직후 에보 지지 세력에 의한 급진적 폭력난동이 전 세계적으로 집중 보도됨으로써 민주화를 위한 과정은 생략되고 오로지 폭력현상만이 일반 대중의 인식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는 차원이다.

언론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흔히 센세이셔널한 면을 부각하거나 집중하기 때문에 전체 과정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보다는 단편적인 이미지가 전달되기 쉽다는 점은 불가피하며, 이를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는 결국 볼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 관계되거나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관계자들의 일차적인 몫이므로 장기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철저한 연구와 평가 노력이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