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vela, Four Decades of Living on Edge of Rio de Janeiro : 도시 공간에 투영된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구조적 모순

김희순(고려대학교 스페인 라틴아메리카연구소)

Janice Perlman(2010)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소깔로를 방문하게 된다. 오래된 성당과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 광장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국적인 정서를 한껏 느끼게 된다. 도시의 중심축을 이루는 광장인 소깔로는 라틴아메리카뿐 아니라 유럽의 도시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녹지촌이라고 하는 유럽 동부 지역의 오래된 마을 형태에서도 “녹지”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오픈 스페이스, 즉 광장의 역할을 하는 넓은 공용 용지를 일컫는다. 소깔로는 라틴아메리카에 미친 유럽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경관이다.

소깔로 외에도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경관은 불량주택지구이다. 파벨라(favela), 바리오(barrio), 참파니뇨스(champaniños), 푸에블로스 호베네스(pueblos jovenes) 등 나라마다 그 구체적인 명칭은 다르고, 우리나라에서도 빈민촌, 판자촌 등으로 불리던 도시 빈민의 집단 주거지는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도시에서 나타난다. 주민 스스로 집을 짓고, 스스로 도시기반 시설을 공급하고, 심지어 스스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곳.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도시에서 나타나는 불량주택지구의 형성 원인과 과정,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은 비슷하다. 배제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소외된 이들의 공간이지만 소수가 아닌 상당수의 도시민들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면에서, 불량주택지구는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주변(minor) 경관이 아닌 주요(major) 경관이 되어 가고 있다. 소깔로처럼.

경우에 따라 도시의 30~40퍼센트가 넘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의 불량주택지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리우의 파벨라를 배경으로 한 브라질 영화인 “신의 도시”가 2001년 깐느 영화제에 초대받으면서였다. 파벨라가 우리 언론에 가장 오랜 시간 비춰진 것은 리우 올림픽 양궁 경기에서였다. 양궁 경기장의 과녁 뒤편으로 보이던 언덕배기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곳이 파벨라였다. 물론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보여주는 신궁의 실력에 그곳을 주목한 시청자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당시 양궁 경기장 주변이 너무 위험해서 우리나라 선수단은 후원사에서 제공하는 큰 버스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는 후문도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파벨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불량주택지구가 위험해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마약상들이 들어서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민, 특히 도시 빈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던 서구 사회에서는 빈곤한 지구에서 마약 중독자가 넘쳐나고, 마약상들이 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현상의 이면에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 즉 빈자에 대한 배제가 있었음을 알려준 역작이 20010년 출간되었다. 인류학자로 브라질을 연구하는 Janice Perlman의 역작인 “Favela, Four Decades of Living on Edge of Rio de Janeiro”이다. 우리 말로는 “파벨라에서의 40여년 간의 기록”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인 펄만(Perlman)은 브라질과 어떠한 연고도 없는 미국의 인류학자이다. 대학생 시절, 미국 정부의 평화봉사단으로 브라질의 농촌에 공연 봉사를 갔던 저자는 이후 1960년대 말, 브라질의 파벨라를 연구하는 학생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막 브라질 지역연구자로서의 걸음을 떼던 그녀는 파벨라 지역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브라질의 불량주택지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던 저자는 최초의 연구 이후 거의 40년 만에 예전에 머물던 마을들을 찾아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1960년대 말 그녀가 만나고 관찰하고 인터뷰를 했던 이들과 그 자녀, 손자들의 삶에 대해 추적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저자가 관찰하고자 했던 주제는, 도시로 유입된 가난한 이촌향도민들이 과연 그 빈곤한 동네를 떠나 사회적, 경제적 계층 상승을 했는가였다. 물론 저자는 그들을 단순 추적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40여 년 전 머물던 그 동네가 이제는 살인과 폭력의 온상지가 되어간 과정을 차분하도고 세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은 또한 파벨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불량주택지구가 왜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는지를 라틴아메리카만이 지닌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산업화 및 근대화와 함께 유럽의 도시에 창궐하였던 빈민지구는 산업의 발전, 현대 도시 계획 등의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고, 라틴아메리카와 비슷한 시기에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었던 우리나라에서도 불량주택지구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왜 라틴아메리카의 도시 대부분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지은, 허름한 불량주택지구들이 오히려 늘어만 가는 것일까에 대한 해답을 저자는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도시사적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판자촌과 그들의 판자촌은 현상은 비슷하지만, 그 형성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지닌 엘리트 중심의 사회를 들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도시가 급속한 도시화를 겪는 과정에서 드러낸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즉 엘리트 중심 사회의 폐해가 도시 공간과 도시민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파벨라를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 도시 공간에 나타나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엘리트 중심의 라틴아메리카 사회 구조에서 찾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도시를 연구하는 도시지리학자 및 도시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엘리트 중심주의가 도시의 공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설명해 왔다. 물론 모든 공간은 평등할 수 없으며,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의 불평등이 공간에 투영되고, 엘리트들의 도시 빈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서구사회에서 매우 뿌리 깊은 것이지만, 여하튼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선진국 못지않게 높은 도시화율을 나타내며, 유럽의 식민지배 이후 도시중심의 사회를 지향해 왔던 라틴아메리카의 도시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 나아가 그 공간의 차이에서 발생한 폭력의 일상화는 도시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에게는 흥미롭고도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나 저자는 도시 공간상에 투영된 불평등을 전체적인 도시의 관점이 아니라, 소외의 끝에 선 이들의 공간과 사회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을 경관을 넘어서 경관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주체들의 삶과 지역사회, 도시, 나아가 나라 및 신자유주의로 넓혀가며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는 파벨라 주민들의 삶만을 재추적하는 것이 아니다. 파벨라가 형성된 배경과 원인, 파벨라와 관련된 주택 문제, 정부와 국제기구의 불량주택 양성화 노력과 그 결과, 마을 자치의 문제 등에 대해 다루고, 파벨라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의 불량주택 지구,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사회 전체를 폭력의 위험으로 몰아넣은 마약 산업, 마약상에 대한 정부의 대처 등과 그 결과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지역연구자인 펄만(Perlman)의 비교적 객관적인 태도이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브라질에 어떠한 사회적, 지역적 연고도 없는 외부자이다. 글을 기술하는 저자의 태도도 매우 담담하다. 물론, 40여 년 전 자신과 같이 살았던 지역주민들에 대한 반가움과 애정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겪어낸 삶의 궤적과 파벨라의 변화 과정을 관찰하는 태도는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와 과학적인 방법론을 견지하고 있다. 매우 지난해 보이는 파벨라 주민들과 그 후손들의 삶을 기술하는 과정에서도 매우 담담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파벨라에 대한 정부나 사회의 정책과 태도를 기술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에 참여한 이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개개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삶의 궤적이 모인 곳이 파벨라임을 이야기 한다. 파벨라에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 자녀들을 키워낸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삶이었음을, 그들의 삶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것임을, 그들을 기술하는 태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그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오래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20년 동안 ~~만 하신 장인”이라는 유행어가 자주 나왔었다. 이 책은 가히 40년 동안 파벨라를 연구한 파벨라 장인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