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기니 / 필리핀 문화 생태 연구

* 이 글은 ‘생태 문명 패러다임 전환 연구 관련’ 소모임 자료를 참고하였습다.

서부아프리카에 위치한 적도기니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필리핀은 공히 해당 국가 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언급할 때 스페인어권 문화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스페인어권 연구에서 필수적이나 그동안 연구 공백 지대로 머물러왔던 만큼 선행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해당 지역의 연구 필요성과 연구 목적은 다음과 같다.

적도 기니 연구

적도 기니(Guinea)

아프리카에 위치한 적도기니는 1968년 독립이전까지 약 2백 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로 구성되어 있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상대적으로 토착종교와 이슬람의 비중이 높은 주변 국가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어와 종교를 한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간주한다면, 적도기니는 기본적으로 스페인이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국가들과 유사한 틀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나라의 정체성을 ‘이스파니닷(Hispanidad)’이라는 역사문화적 프레임에서 바라볼 충분한 근거가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스파니닷’은 ‘스페인적 정체성’ 혹은 ‘스페인적 연대성’을 의미하며 스페인과 중남미는 물론 5천만에 달하는 미국 내 히스패닉 거주자들까지 포함한 전 세계 스페인어권 지역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들을 고려할 때 적도기니의 ‘이스파니닷’은 라틴아메리카나 미국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스파니닷’이라는 개념 자체가 ‘앵글로색슨적 헤게모니’에 대한 위기의식과 반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용어가 종교와 문화를 포함한 광범위한 ‘스페인적 전통’을 지칭하는 의미로 확장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였는데, 그 저변에는 당시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패권을 장악해 나가던 미국와 영국 등 앵글로색슨 국가에 대한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적도기니의 ‘이스파니닷’은 ‘앵글로색슨’과의 상대성보다는 ‘아프리카성’ 혹은 ‘흑인성’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독립이후 아프리카 고유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스파니닷’은 라틴아메리카나 미국(히스패닉)처럼 ‘연대’의 상징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둘째, 적도기니의 단일한 인종적 특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적도기니의 인종 구성은 99%가 순수 흑인으로, 오랜 식민지배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원래부터 존재했었던 토착문화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존재했던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적도기니는 서구인들의 도착 이전까지 가부장적 전통의 부족사회에 머물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스페인 문화의 수용과 접변 과정에서 서로 다른 분기점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탈식민화의 노력과 흑인 중심의 인종구성에도 불구하고 적도기니인들이 스페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호의적이다. 이 나라의 언론인인 노코고 오비앙은 “적도기니인들이 전 식민종주국에 대해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매우 보기드믄 아프리카인들”이라며 이러한 모습은 매우 ‘복합적인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온 이 나라의 ‘정체성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복합성, 이중성의 배경은 향후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규명해 내어야 할 것이나, 그 원인의 일단을 스페인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즉, 영토적 야심이나 자원착취의 목적에서가 아니라 스페인 선단의 중간기항지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던 단순한 식민화의 동기,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중반에 ‘평화로운 방식’으로 진행된 독립의 과정, 독립이전에도 스페인의 지방행정구역에 편입되어 본토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적도기니의 역사, 인종, 사회문화적인 특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본 연구의 기제를 이루고 있다. 즉, 본 연구는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은 적도기니의 국가적 정체성을 ‘이스파니닷’의 개념 하에서 살펴볼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이 나라의 고유성을 반영하여 기존의 ‘세 개의 이스파니닷(스페인,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미국)’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이스파니닷’(아프리카의 이스파니닷)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리핀 연구

필리핀(Philippines)

마젤란 원정 500주년을 맞이하여, 본 연구는 아시아에서 최초이자 가장 전면적으로 서구와 접촉하고 문화를 수용한 필리핀의 문화·사회적 DNA를, 스페인 부왕령 시기의 연대기들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오늘날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한국 수출 규모로 14위, 필리핀 수입 규모로 7위)일 뿐만 아니라, 약 8만 9000명 이상의 교민이나 유학생, 주재원들이 거주할 정도로 경제·사회적으로 밀접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20세기 이후 역사와 관광이나 교역과 같은 산업에 대한 관심에 국한되어 있어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필리핀의 특수성을 살펴 보면 지리적으로는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종교·문화적으로는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역사적으로는 중국이나 일본, 아랍과의 교역이나 문화교류의 교량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배경으로 인해 필리핀의 문화·사회적 정체성은 복합적이며 다원적이다. 따라서 필리핀을 영어권 아세안 국가, 미국의 지배를 받던 동남아 국가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들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필리핀의 저명한 역사학자 안토니오 몰리나 메미헤(Antonio Molina Memije)에 의하면 “(미국이 지배했던) 50년은 스페인과 이베로아메리카에 의해 333년간 형성된 것들을 제거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세월”에 불과했다. “미국인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언어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스페인적인 요소를 깡그리 지워버리고자 했으며, 거의 그 목표를 이룰 뻔했으나” 오랜 역사에 축적된 문화적 흔적이 그리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필리핀 이해의 과정에서 스페인의 영향은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핵심적인 토대로 간주되어야 하며, 스페인적 유산은 필리핀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DNA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필리핀 연구에서 스페인의 영향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는 역으로 히스패닉연구에서 필리핀이 낯설고 생소한 지역이 아니라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미국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고 당당한 연구대상으로 설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스페인 부왕령 시기 연대기 분석을 통해 필리핀의 문화·사회적 정체성을 고찰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리핀이나 스페인은 물론, 20세기 전반기에 필리핀을 식민통치하며 광범위한 연구 자료를 축적한 미국의 경우에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본 연구는 지배자들의 시선이나 피지배자들의 시선이 아닌 제 3 자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균형 있게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연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스페인 통치기 필리핀 사회·문화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관심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