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미세먼지… ‘자연권’ 헌법 명시로 해결책 찾아야”

정경원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장

“9년간 4조원 쏟아붓고도
미세먼지 개선 달성못해
이제는 인식의 전환 필요

볼리비아 등 남미국가처럼
‘지구 권리’헌법 명문화뒤
中·日 등 주변 동참시켜야”

미세먼지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자연권 사상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하고, 이를 계기로 인접 국가인 중국, 일본 등도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와 관련, 국내 미세먼지 문제를 유발하는 국외 요인 비중은 크게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핵심 관련 국가인 중국 등과의 협상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기술·산업·경제적인 접근 역시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권과 인문학적 방식으로 미세먼지 해결에 접근하면 국내외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주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정경원(65·스페인어학 교수)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소장은 1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로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본관에서 기자와 만나 “볼리비아는 8년 전에 헌법에 ‘어머니’ 지구의 생존 권리를 보장하자는 일명 ‘어머니 지구 권리법’을 명문화했다”면서 “이를 참고삼아 우리나라가 먼저 자연권을 헌법에 반영하고 실천하면서 이웃 국가의 동참을 호소한다면 미세먼지 등과 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동아시아 국제 벨트’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햇빛, 공기 등과 같은 환경 문제는 우리만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므로 전 지구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특히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모이면 자신과 지역, 국가를 넘어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환경 정책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연권을 심기 위해 사활을 걸고 노력해야 중국 등 인접 국가에도 당당하게 동참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생각이다. 앞서 정 소장이 이끄는 중남미연구소는 지난 5월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공모한 HK+(인문한국플러스 해외지역분야) 연구 사업에 ‘21세기 문명전환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과제를 제안해 최종 선정됐다. 오는 2026년까지 ‘한·중남미 생태문명 융합 연구사업단’을 주체로 해 진행한다. 다음은 정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한국에 필요한 이유는 뭔가.

“세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빈번한 가뭄과 홍수, 불규칙한 계절 변화 등 기후위기와 다양한 환경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제 연중 전국을 뒤덮는 미세먼지 문제는 전 국민의 일상적인 관심사가 됐을 정도다. 문제는 위험에도 실천이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바 ‘기든스 역설(Gidden’s Paradox)’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빈곤은 계급적이지만 미세먼지와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미래학자 울리히 벡이 경고한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진입한 것이다. 미래 위험을 외면한 채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된 때문이다.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 왜 라틴아메리카인가.

“인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곳은 선진국이나 서구 세계가 아니었다. 뜻밖에도 ‘자연권’을 표방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었다. 2008년 제정된 남미 에콰도르 신헌법은 세계 최초로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명시하고,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자연에는 자연권이 존재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11년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의 생존 권리를 보장하자는 일명 ‘어머니 지구 권리법’을 명문화했다. ‘지구는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 자체가 유기체’라는 사상에 기반을 둔 이 법은 한 국가의 법이 전 지구적 범위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시한 최초의 사례였다.”

― 헌법 개정이나 인식론적 정책 전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물론 환경 혹은 기후변화 문제를 경제적 접근, 효율적인 정책 개발 등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 그리고 사회공동체 차원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없으면 이러한 해결 방안들은 ‘반쪽짜리’ 정책이거나 혹은 ‘공염불’이 되기 쉽다. 일례로 1차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 사업(2005~2014년)에 4조5000억 원을 투입했으나 미세먼지 등 개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게 되나.

“‘인문학적 자율성’ 연구팀(인문학), ‘사회적 공동체’ 연구팀(사회과학), ‘자연친화적 생태성’ 연구팀(자연과학)이 힘을 합해 ‘초학제적인 융합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자연권이 단순히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실제 정책으로 이행 가능한지 사회과학적 지식을 빌려 탐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학술논문 창출에 머물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지역인문학센터’(일명 ‘파차마마’·대지의 어머니라는 뜻의 원주민 언어)를 설립해 대중과 소통하며 함께 토론하고 새로운 지혜를 공유해 갈 것이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