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래는 생태문명』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길

이나미 전임연구원(동아대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들어가며

2023년 5월 1일 콜롬비아의 아마존 마을에 비행기가 추락해 성인 2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함께 탑승했던 4명의 아이들이 열대우림에서 40일간을 보내다 살아 돌아왔다. 그들은 각각 13살, 9살, 4살이었고 막내는 고작  태어난 지 11개월 된 아기였다. 13살의 레슬리는 어떤 과일을 먹을 수 있고 또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 본인과 동생들을 살렸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접하고, 브라질 과학자 카를로스 노브레(Carlos Nobre)와 베네수엘라 선주민 지도자 그레고리오 미라발(Gregorio Miraval)을 포함한 <아마존 과학패널 (the Science Panel for the Amazon)>은 아이들을 살린 조상의 지혜에 경의를 표했다. 그들에 의하면 이 사건이 준 교훈은 “우리에게 존엄하게 살고 생존하는 방법, 집단복지의 중요성, 대자연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가르치는 선주민 조상 지식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선주민이 말하는 내용을 경청”해야 하며, “선주민 수호자들이 아마존을 돌보는 것처럼 아마존은 살아있고 어린이와 노인을 돌본다”는 것이다. 또한 “열대우림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1]

만일 근대문명의 지식만을 습득한 이들이 아마존에 남겨졌더라면 이 아이들처럼 살아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근대문명이 무시하고 배척한 생태적 지식과 가치관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립 클레이튼(Philip Clayton)과 앤드류 슈워츠(Andrew Schwartz)가 쓴 『미래는 생태문명 What is Ecological Civilization?』(2023) 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생태문명 개념의 탄생과 전개

‘생태문명’ 개념은, 근대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의미하는 일반적 의미로도 많이 쓰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생태문명이 생태사상 및 운동과 관련된 특별한 한 흐름을 대표하는 개념임을 알게 된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용어는 1984년 구소련의 한 환경전문가가 최초로 사용했으며 1987년 중국의 농업 경제학자가 이를 재조명했다. 이후 1998년 중국공산당은 개발주의에서 생태적 개발주의로 전환하면서 이 개념에 매주 집중한다. 즉 2012년 중국공산당은 ‘생태문명 달성’이라는 목표를 헌법에 포함시켰고, 5개년 계획에도 이를 명시했다. 시진핑은 2017년 차기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생태문명 개념을 강조했다. 생태문명이란 목표를 집권당의 플랫폼으로 구축한 나라는 아직까지 중국 외에는 없다고 한다. 저자들은, “문명적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용어는 ‘문명’을 포함하고 있어, 생산성, 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의 목표에 적합하고, 또한 서구의 근대문명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적극 채택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미국 신학대학원에 몸을 담고 있는 저자들이 생태문명의 중국적 기원을 적극 알리고 칭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아마도 저자들이 소속된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의 자유롭고 포용적인 학풍 때문일 듯하다.

생태문명이 영어 텍스트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로이 모리슨(Roy Morrison)이 『생태민주주의』라는 그의 책에서 기술적 용어로 사용하면서부터이다. 2014년에는 유엔 등 국제기구가 생태문명 관련 위원회를 구성한다. 생태문명 개념이 더욱 본격적으로 적극적인 환경운동의 담론이 된 것은, “생태문명”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가 2015년 6월 포모나 칼리지에서 열리고부터이다. 이때 전 세계에서 약 2천여 명이 참석했으며, 빌 매키번(Bill McKibben),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 존 콥 주니어(John B. Cobb, Jr.) 등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산물이, 저자인 클레이튼과 슈워츠가 창립한 생태문명원(EcoCiv)이다.[2] 이들은 2019년에 What is Ecological Civilization?: Crisis, Hop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이란 책을 썼고, 이들에게 수학한 이동우 박사가 지금 이 서평의 대상이 된 『미래는 생태문명』이란 제목으로 번역서를 냈다. 역자에 의하면 이 책은 “2015년 컨퍼런스에서 촉발된 생태문명 운동의 시작과 비전, 그리고 그 후 약 4년 간에 걸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생태문명원의 활동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종합한, 그간의 생태문명 운동을 집약한 첫 번째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3] 내가 볼 때도 이 책은 생태문명이란 용어의 탄생, 역사, 정책, 지향 등을 설명한 생태문명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생태문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프란치스코 교황

생태문명과 관련하여 라틴아메리카가 주목될 수 있다. 우선 그 첫째 이유는 근대 서구 중심의 단일문명이란 신화를 깨야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단일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구 문명을 표준으로 보고 나머지 문명을 외면해 왔는데 동아시아, 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명은 동시다발적으로 번성했다. 저자들은 잘 알려진 마야(Maya) 문명을 예로 든다. 마야 문명은 유까딴(Yucatán) 반도에서 멕시코를 가로질러 과테말라와 온두라스까지 퍼져 나갔다. 마야의 수학자들은 0의 개념을 발견했고 천문학자들은 일식을 예측했으며 장인들은 고무를 생산했고 엔지니어들은 100미터에 달하는 현수교와 수압이 조절되는 정교한 지하 수로를 건설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생태문명과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고리를 들자면 단연 교황 프란치스코[4]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자인 저자들은 기독교에 오히려 매우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그들에 의하면, 16세기 이후 근대 사상은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강조하고 그 외의 종교들을 거짓된 것으로 규탄하고 강제로 억압했다. 또한 기독교는 자신과 같은 뿌리를 가진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조력을 받아 앞으로의 전환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반면에, 저자들을 포함하여 생태문명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 교황은 환경 위기와 사회위기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환경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호세 무히카(José Mujica)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이다”라고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5] 생태문명론자들도 빈곤, 소외 등 사회문제와 자연보호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해결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환경적이며 사회적인 개혁과 장기적이고 시스템적 해결을 지향한다. 이렇듯 생태문명은 사회문제를 포함하는 통합적 접근이면서 또한 마르크스주의에도 손을 내민다는 측면에서도 통합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개혁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더구나 남아메리카의 출신의 교황이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클리오 추기경은 동물과 환경의 수호성인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그가 그 이름을 택한 이유는 브리질 상파울루의 클라우디오 우메스(Cláudio Hummes) 추기경이 그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선출된 배경에는 비유럽파와 개혁파의 응집으로 교황청의 개혁과 부패 일소가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빈곤과 환경문제를 강하게 주장하여 현재 전 세계인의 지지를 얻고 있다.[6]

저자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을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가장 저명한 인물”로 꼽는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 비신자들에게도 매우 존경받고 있는 그는 2015년 <찬미 받으소서>란 회칙을 발표한다. 이 회칙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보내는 호소로서, 전 인류가 전 지구적인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이다. 핵심주제는 ‘공동의 집 돌보기’로서, 이는 환경정의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도 연결된다. 교황은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금욕은 단순한 금욕주의의 겉모습이 아니라, 현실적 존재들을 단지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거부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집단적 복리를 위한 총체적 접근법을 ‘통합생태학(integral ecology)’이란 용어로 부른다. 통합생태학은 물질인 분자부터 생태계와 사회적 역학관계와 전 지구적 문화까지 우주를 구성하는 복잡한 상호관계들에 대한 심오한 인식에 기초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정 지역이 오염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사회의 운영 방식과 경제적 상황과 행동방식과 현실 파악 방식들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변화의 규모를 고려할 때, 문제의 각 부분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해답을 찾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7]

위 발언은 생태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 즉 자연생태, 사회생태, 마음생태의 통합적 접근을 상기시킨다. 가타리에 의하면 생태문제는, 공해, 환경파괴 등 자연생태만을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공해와 오염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접하는 사람들 및 권력의 태도를 함께 봐야 한다. 생태문제의 한 원인인 성장주의ㆍ개발주의는 사회관계와 인간마음에 깊이 침투해 있다. 가타리에 따르면, 무엇보다 자연은 인간문화와 분리될 수 없으며 생태권, 기계권, 사회,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통합생태학은 생태문명론의 방식처럼 포괄적 차원에서의 생태위기의 근본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시스템적인 접근법을 지향한다. 또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심리적, 인식론적, 윤리적, 영적 요소 등 상호 연결된 요소들의 그물망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낸다. 생태문제는 피상적 개혁만으로는 어렵고 습관적 인식과 사고패턴의 근본적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가치체계를 내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삶과 사회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교육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곳에서 교황은 이것을 생태영성(ecological spirituality)이라고 불렀다.

저자들은 생태문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와 영성의 역할이 핵심이라고 본다. 그들은 종교와 영적 공동체들의 지원 없이는 생태문명을 구축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세계 인구의 약 85%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으므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중대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종교 공동체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국지적이고 경쟁적일 때는 분열을 일으키고 폭력을 낳지만, 종교가 공동체를 강조한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정신적 영감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은 사례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든다.

저자들은 그 외에, 다원성을 포용하는 힌두교, 물질이 아닌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 급진적 비폭력을 주장하는 자이나교, 우주와 인간을 하나로 보는 도교, 천지인 삼위일체를 강조하는 유교가 생태문명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이나교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자이나교 승려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인간의 숨이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는 보통 우리가 나쁜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과 완전히 반대의 논리다. 저자들은 이러한 종교들이 자비심으로 향하는 서로 관련된 경로들의 집합체이므로 전환기에 있는 이 세계에 가장 강력한 희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패러다임의 전환

저자들은 생태문명과 연계된 운동들로, 앞서 언급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합생태학 외에 데이비드 코튼(David Korten)의 대안적 이야기, 토마스 베리와 브라이언 스윔의 우주론, 코다마 오카다의 영적 비전, 지구 헌장, 구성적 포스트 모더니즘, 중국의 생태문명 담론을 든다.

이러한 운동과 사상은 근대문명을 이끈 데카르트 식의 근대철학을 비판한다. 또한 모든 것을 물리학적 현상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통념과, 유전자가 생물 시스템의 변하지 않는 결정적인 구성 요소라는 신화도 비판한다. 예를 들면 도킨스의 “신체들은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본들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구성하는 생존을 위한 기계들이다. 우리는 유전자라는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로봇 차량들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8] 저자에 의하면 유전자가 청사진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자가 유기체의 미래의 모든 특징들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유기체들은 돌연변이를 일으킬 뿐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적응해 나간다. 유기체는 유전자의 명령뿐 아니라, 환경으로부터 오는 변화, 면역체계에 미치는 시스템적 영향, 개별 세포의 화학작용에 미치는 영향으로도 변화된다. 저자들에 의하면 생태학이란 기존 과학의 환원론에 반대하는 것이다. 생태계들은 복잡하고 새로운 실재로서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한다. 유기체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그들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생태계 구성원들은 이렇듯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생태문명 프레임워크 즉 에코시브 Eco-civ 패러다임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유기체적이고 동적이며 상호연결된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살아 있는 시스템 프레임워크다.”[9]

이들은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통해 모든 것들의 생성/되어감(becoming), 상호연관성, 내재적 가치를 강조하는 풍요로운 생태철학을 발전시켰다. 화이트헤드는 신과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시각에 도전하여, 만물 안에 있는 신의 목표는 피조물 각각을 위한, 그리고 신성한 생명에의 지속적인 기여라는 가치의 실현이라고 본다. 따라서 “비인간 생명까지 포함한 모든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증진함”이 생태문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10] 생태문명 패러다임에서 실재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공동체’, 즉 상호 연결된 전체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관계들로 구성된다.

구체적 제안들

생태문명론자들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더욱 복잡해지고 풍요로워지는 생태계가 조성되도록 돕자는 것이라고 한다. 농업, 교육, 거버넌스, 경제학, 공동체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을 생태적 프레임의 관점에서 재고하게 하는 전체론적 비전을 갖자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문명은 구체적 함의를 가진다. 농사짓는 방식, 도시를 조성하는 방식,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 변화들이 포함된다.

농업의 예를 들면, 다년생 곡물을 발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일 년생 농작물은 토지 경작을 매년 하게 하여 탄소 배출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다년생 곡물 생산이 필요한데, 캔자스주 토지연구소의 웨스 잭슨(Wes Jackson)은 다년생이면서 일 년생만큼 많은 종자를 생산하게 하는 곡물 ‘컨자(Kernza)’를 개발했다. 건축의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Paolo Soleri)는 ‘아콜리지(arcologies)’라고 하는 건축 생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도시화도 권장될 수 있다. 도시화가 생태를 망친 주범 중 하나긴 하지만, 존 캅 주니어는 도시화가 생태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즉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태양 에너지로 모든 필요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라는 것이다.[11] 그리고 “도시는 현재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1/10만 차지해도 된다.”[12]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 “농업, 레크리에이션, 야생지대를 위해 훨씬 더 많은 땅이 남겨질 수 있다.”[13] 즉 “도시는 자연 생태와 농업 생태라는 컨텍스트와 조화로울 수 있으며 도시 내부 생활도 생태적 특성을 가질 수 있다”라는 것이다.[14] 사실상 도심과 떨어진 전원적인 교외에 집을 갖고 출퇴근을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 더 탄소 배출을 심화시킨다. 도심에 직장, 학교, 마트 등과 가까운 곳에 촘촘히 모여 사는 것이 이동을 위한 탄소 배출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길일 것이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마이크로 경제와 국민총행복을 주장한다. 마이크로 경제는 외부의 대규모 금융기관이 아니라 소규모 기업 같은 지역 내 경제 단위가 주요 경제 주체가 되는 경제다. 검소함, 지속가능성, 상호호혜주의가 지역공동체의 경제 건전성을 나타내는 중대한 지표가 된다. 또한 국내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 중시되는 국가를 지향한다. 부탄은 이미 2008년에 헌법에 국민총행복 지수를 추가했다. 국민총행복지수는 우수한 거버넌스, 생태적 다양성과 회복력, 공동체의 활력, 문화적 다양성과 회복력 등 개인의 전반적인 행복과 관련된 9가지 요소를 평가하여 측정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질이 아닌 양적인 것만 보면 불평등이 보이지 않는다. 옥스팜의 2017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명의 남성이 인류의 가장 가난한 38억 명과 같은 양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수치를 중시하는 경제모델은 우정 등 인간관계도 왜곡시킨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 얼마나 많은 친구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어떤 친구이며 그 친구와의 관계는 어떠한지는 덜 중요해지고 있다. 저자들은 또한,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공적인 가치로 도입하면 가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의 배타적인 지배를 타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사회가 생명을 돌보며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려면 그 사회는 아름다움을 사회의 핵심 가치이자 원리로 삼고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대도시의 대규모 대학보다는 농촌의 학교가 더 전인적 인재들을 배출하기에 적합하다고 본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텃밭 가꾸기, 생태계 학습과 체험, 책임감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학습할 수 있다. 즉 감각, 경험, 체험 등을 통해 몸에 익히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학제 간 또는 초학제 간 교육과정을 중심에 둔다. 인턴십 도입, 생태문명 등 전체를 틀 짓는 개념을 공부한다. 즉 기본적인 철학, 인식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연구, 즉 세계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들 특히 가치와 관련된 문제들을 탐구하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앞선 방법, 기술들을 탐구하며 제안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처한 환경, 사회적 맥락이 서로 매우 다르므로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각각의 사례마다 고유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역화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 모델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교육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농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패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쉽게 알려줄 수 있겠지만 도시는 교사들이 더 큰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며

저자들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그 답으로 ‘생태인(eco-person)’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탄소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고 기후온도를 낮추는 등 양적 측면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풍요로운 관계라는 질적인 측정기준”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15]

또한 생태문명은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아니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것은 완벽한 미래에 대한 꿈이라기보다는 일련의 구체적 과업들이라는 것이다. 생태문명은 최종적이고 고정된 목적지나 목표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공동체 안에서의 역동적인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학자 문순홍 역시, 생태적 사유는 대안적 유토피아를 설정하라는 요구, 즉 에코토피아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으라는 요구와 항시적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강요된 질문에 호응할 때 자칫 ‘생태론자들만의 이상사회’를 제시하는데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존재와 당위, 현실과 이상의 긴장에 입각한 생태적 사유의 지속적 실천이라는 것이다.[16]

무엇보다 저자들을 포함하여 생태문명론자들에 주목할 만한 강점은, 유사한 다른 철학 및 운동과의 공통점을 강조하며 연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새로운 사상을 주창할 때 때로 기존의 다른 사상과의 차이 또는 그들의 결함을 강조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보인다. 저자들은 생태문명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현재 통용되는 개념들로, 통합생태학, 구성적 포스트모더니즘, 요코 문명, 유기체적 주의, 과정 철학, 유기체 철학 등을 든다. 자신들의 사상과 운동의 구성에 있어 다른 기원들을 드러내고 함께 하려 하는 것이 이들의 큰 장점으로 보인다.

* 서평 도서: 필립 클레이튼, 앤드류 슈워츠 저(2023), 『미래는 생태문명』, 이동우 옮김, 산현재.


[1]  Patrick Greenfield(2003), “How Ancestral Knowledge and Respect for the Rainforest Kept Four Lost Children Alive,” The Guardian.

[2]  한국에서 생태문명원은 2022년 한신대학교에서 설립되었다.

[3]  필립 클레이튼, 앤드류 슈워츠(2023), 『미래는 생태문명』 산현재, 244쪽. (이하 『미래는 생태문명』)

[4]  제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다.

[5]  김종철,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

[6]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낙태, 피임, 동성애, 여성사제서품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어 비판도 받고 있다.

[7]  『미래는 생태문명』 115쪽.

[8]  『미래는 생태문명』 49쪽.

[9]  『미래는 생태문명』 60쪽.

[10] 『미래는 생태문명』 103쪽.

[11] 『미래는 생태문명』 16쪽.

[12] 『미래는 생태문명』 16쪽.

[13] 『미래는 생태문명』 16쪽.

[14] 『미래는 생태문명』 16쪽.

[15] 『미래는 생태문명』 208쪽.

[16]  문순홍(2006), 『생태학의 담론』, 아르케; 박민철(2017), 「한반도 분단극복과 생태주의의 결합」,『서강인문논총』, 48집.